
조각의 본질과 고전적 아름다움을 탐구하는 작가의 세계를 소개하고자 한다.
인체와 꽃을 주요 소재로 한 은유적 조형을 통해 여성의 내면과 심상을 탐색하며, 삶의 여정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이러한 조형 언어는 작가의 창작 의도와 관람객의 감정적 경험이 맞닿는 지점을 형성한다.
이번 전시가 내적 심상과 미적 사유가 만나는 장으로 확장되기를 기대한다.
또한, 근래 보기 드문 레트로 감성의 전시를 통해 보다 넓은 대중과의 소통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인사아트센터 (인사동길 41-1) 3층 박민광 조각가의 전시회는 다음달 1일까지 계속된다.
그는 흙으로 작업할때 차가운 흙이 달라붙는 느낌이 좋다고 언급한다.
낮은 조명 아래 조용히 선 흙 조각들이 눈에 들어왔다.
여성의 얼굴과 꽃잎이 겹치듯 얽힌 작품, 양팔을 모은 채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한 나비형상의 조각, 그리고 한쪽 벽면에 놓인 오래된 스케치들까지—모두가 하나의 시간들을 품고 있었다.
이곳에서 30여 년, 조각가 박민광은 자신의 삶과 감정을 흙과 브론즈에 새겼다.
일상에서 떠오르는 미세한 감정의 파편, 관계 속에서 지나가는 말 한마디, 심지어 벽에 스친 낙서 하나까지도 그는 “나를 흔드는 것들은 모두 작품이 된다”고 말한다.

이번 인터뷰는 박민광의 ‘시간을 조각하는 방식’을 듣기 위한 자리였다.
그의 삶과 작업 세계는 어떻게 서로 얽히고, 또 어떻게 작품의 형태로 완성되었을까.
■ “살다 보니 조각이 결국 나를 닮아 있더라고요”
“조각이란 결국 내가 살아온 시간을 그대로 담는 그릇이에요. 젊을 때 만들었던 작품과 지금의 작품이 너무 달라요. 그땐 내가 젊었고, 지금은 나이가 들었으니까요.”
박민광은 조각가의 삶을 이렇게 정의했다.
그는 20대 후반 러시아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서울 외곽의 작은 작업실에서 조각을 다시 시작했다.
전시를 자주 하지 못했던 이유는 단순했다. 완성도에 대한 요구가 너무 높았고, 자신이 납득하지 못하는 작품은 세상에 내놓기 어려웠다.
“작업은 계속하고 있었는데, 전시는 안 했죠. 어느 순간 깨달았어요.

‘이러다 전시 한 번 못 해보고 끝나겠다’ 하고요. 그때부터 마음을 좀 고쳤어요. 그리고 첫 전시를 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셨죠. 그 이후론 전시도 꾸준히 하게 됐고요.”
그 말투는 담담했지만, 여러 번의 결심과 내적 다툼이 있었다는 것을 짐작케 했다.
■ 시간이 제목을 바꾼 작품… “내가 변하니 작품도 달라지더라”
박민광에게 작품은 ‘살아 있는 존재’다. 완성된 순간부터 정지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 따라 의미가 변하고, 어쩔 때는 제목조차 새롭게 요구한다.

그가 특히 소중히 여기는 작품 하나는 러시아에서 돌아온 직후 만든 초기작이다.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당시의 긴장과 불확실함, 그리고 사랑이 담긴 작품이다.
“원래 붙였던 제목이 있었어요. 그런데 세월이 지나니 제가 그 작품을 보는 감정이 달라진 거예요. 내가 변하니까, 작품도 다르게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나중에 제목을 ‘사랑으로 피는 곳’으로 바꿨어요. 같은 조각인데, 제 감정이 변하면서 작품도 성장한 거죠.”
작가의 시간은 결국 작품의 시간과도 연결되어 있었다.
■ “조각은 사방을 다 책임져야 해요”
— 조각을 선택한 이유
박민광이 회화 대신 조각을 택한 이유는 명확했다.
“조각은 앞에서만 예쁘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옆에서도, 뒤에서도 설득력이 있어야 하죠. 그 ‘사방의 책임감’이 좋았어요. 형태를 완성해가는 과정이 너무 흥미롭고, 흙 만지는 감촉도 정말 좋아요.”
20~30대 박민광은 인체의 곡선이 만들어내는 공간적 움직임에 매혹되어 있었다.
특히 ‘머리카락의 흐름’을 통해 공간을 조각하는 실험을 집요하게 이어갔다.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어지면 그 자체가 공간을 만들어내잖아요. 그걸 조각으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죠. 인체가 공중에 붕 떠 있는 느낌을 조각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이 과정에서 그는 외부 신화나 상징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때는 남편과의 관계, 둘이만의 세계를 작업했어요. 외부 신화나 상징을 가져오고 싶지 않았어요. 제 이야기니까.”
■ “작업 아이디어는 갑자기 치고 들어와요… 그래서 운전은 못 해요”
작가의 영감은 우아한 형태로 찾아오지 않는다. 어느 순간 문득 들어오고, 단숨에 몰아친다.
“갑자기 생각이 깊어져요. 길 옆 낙서, 지나가는 말, 이상한 모양—그런 것들에서 ‘탁’ 하고 들어와요. 그래서 전 운전을 잘 못 해요. 정신이 작품으로 훅 들어가 버리니까 위험하죠.”
그의 하루는 여러 의미에서 매우 ‘단순’하다.
하지만 그 단순함 속에서 쌓인 감정과 생각은 작품의 형태로 뒤늦게 되돌아온다.
음악은 그의 감정을 가장 빠르게 건드리는 매개다.
“클래식도 듣고, 국악도 듣고, 요즘 노래도 듣고… 뭐가 됐든 그때 제 감정에 맞으면 다 받아들여요. 음악 틀어놓고 혼자 작업하는 시간이 제일 좋아요.”
■ 중년의 조각: 여인·꽃·나비가 등장하기 시작하다
박민광의 조각 세계에 극적인 변화가 나타난 것은 중년 이후였다.
임신과 출산이라는 경험은 그의 몸과 감정뿐 아니라, 조각의 언어 자체를 바꿔 놓았다.
“임신은 제게 너무 큰 사건이었어요. 제 생활 패턴, 감정의 흐름… 모든 게 바뀌었죠. 어느 날 화장실 거울을 봤는데, 젊은 나와 중년의 내가 함께 보이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 순간부터 여인과 꽃이 작품 안에 자연스럽게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그의 작품에서 ‘꽃’은 여성성의 은유가 되었다.
그리고 ‘나비’는 남성 혹은 기다림의 시간, 감정의 떨림을 상징했다.
대표작 **〈그대 향한 사랑〉**은 그 흐름이 극대화된 작품이다.
“꽃잎은 여인의 머리 같기도 하고, 흐르는 시간 같기도 해요. 나비가 날갯짓할 때 생기는 떨림은 청년의 마음 같기도 하고요. 그런 감정이 조각으로 번져 나간 거죠.”
■ “나는 결국 사유하는 과정과 함께 늙어가는 사람”
— 박민광의 조각 철학
그에게 조각은 ‘결과물’보다 ‘사유하는 과정’이 더 중요했다.
“작품이 완성되는 그 순간보다, 그걸 고민하고 형태를 잡아가는 과정이 더 소중해요. 사람은 변하는 존재잖아요? 그 변화가 고스란히 작품에 담기거든요. 조각은 그 시간을 붙잡아두는 일이라 생각해요.”
박민광의 작품이 주는 잔잔한 울림은 그가 본질적으로 ‘관찰하는 사람’, ‘사유하는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저는 화려한 걸 좋아하지 않아요. 가만히 있는 상태가 좋고, 그냥 바라보는 게 좋아요. 그게 결국 제 작업으로 이어지는 것 같아요.”
박민광의 작품은 격정적이지 않다.
대신 아주 오랜 시간, 조용히 쌓인 감정의 층위들이 조각의 표면에 차곡차곡 내려앉아 있다.
그의 여인은 요란하지 않지만 단단하고, 꽃은 화려하지 않지만 오래 머문다.
그리고 그 뒤에 있는 작가는 말한다.

“살아온 시간이 작품을 바꿔 놓았어요. 앞으로도 그럴 거고요.”
삶이 형태가 되고, 형태가 다시 삶을 비추는 작업.
박민광의 조각은 바로 그 ‘순환’을 기록하는 장치처럼 보였다.



박민광은 AI와 디지털 기술에 대한 생각도 밝혔다. 그는 AI를 ‘창작의 보조적 도구’로 보며, 인간의 감각과 사유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고 평가했다.
“AI가 그림을 그리거나 형태를 제안할 수도 있겠지만, 제 감정, 제 경험, 제 사유가 없이는 작품이 되지 않아요. 다만 AI가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면, 그걸 받아들이고 제 조형 언어와 결합시킬 수도 있죠. 결국 중요한 건 ‘인간의 마음과 경험’이에요. AI는 그걸 보조하는 역할을 할 뿐이죠.”
그는 전통적 조각 기법과 현대적 기술의 결합이 만들어낼 새로운 예술적 지평에 대해 기대감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