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영빈, 가장자리 방(Edge), 37x37cm, Oil on canvas, 2020.JPG
비디갤러리는 지난 5일부터 1월 6일까지 최영빈, 최은혜, 최제이 작가가 참여하는 3인전 '겹쳐진 시간의 선들, 기억이 빚는 색들' 을 선보이고 있다.
세명의 화가는 현실의 장면과 내면의 감각을 각기 다른 회화적 언어로 환기시키며, 경험을 해석하고 조직하는 다층적 시각 세계를 그림에 녹아낸다.
관찰과 기억, 즉흥성은 각 작업 속에서 하나의 구조로 응축되며, 이는 시간의 흐름과 감정의 변화를 고유한 방식으로 시각화한다.
이번 전시는 세 작가의 탐구가 서로 교차하며 생성하는 감각적 표현과 그에 대한 다양한 시선을 담고 있다.
최영빈은 부분과 전체, 상상과 기억, 색과 명암처럼 동시적 포착이 어려운 요소들을 한 화면 안에 병치해, 관람자가 스스로 이미지를 결합하도록 이끄는 회화적 공간을 구축한다.

최영빈, 여럿이 되기 위한(Discrete Arrangment), 122.5x69cm, Oil on canvas, 2020.JPG
빛과 어둠의 극단적 대립보다는 동적·정적 성질이 공존하는 관계에 주목하며, 하나의 붓질 안에서도 함께 존재하는 리듬을 만든다.
반복되는 흔적과 캔버스를 나누는 그리드 위에 점과 붓질의 박자를 고정해 형태를 이루고, 이를 통해 작가는 시간의 조각들을 수집하는 틀을 마련하며 생성과 소멸이 맞닿는 지점을 응시하는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최은혜는 삶 속에서 스친 모호한 경계의 순간들을 수집해, 경험과 기억 사이에서 발생하는 조형 감각을 색과 형태의 여러 층으로 풀어낸다.

최은혜, Layers of Time, 80.3x100cm, Oil on canvas, 2024.jpg
사라지는 빛, 순간적 움직임, 풍경의 인상은 기억과 결합되며 화면 안에서 새로운 시간성과 색채를 얻는다.
화가의 작업에 반복해 등장하는 산의 형상은 아이슬란드와 노르웨이를 비롯한 여러 장소에서 채집한 이미지로, 빙하·오로라·빛의 덩어리 등 다양한 의미로 변주되며 유동적 형태를 띤다.

최은혜, Toned Landscape, 72.7x60.6cm, Oil on canvas, 2023.jpg
연작 Toned Landscape, Layers of Time은 현실과 비현실이 겹쳐지는 찰나를 색채의 지층으로 드러내며, 관람자로 하여금 경계의 중간 지대를 체감하게 한다.
화가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표면과 이면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탐구한다.
최제이는 사전 스케치 없이 영감을 준 풍경 사진을 곁에 두고, 순간의 감각을 따라 즉흥적으로 바람을 그린다.

최제이, The Sanctuary63, 60.6x72.7cm, Oil on canvas, 2025.jpg
텅 빈 캔버스에 처음 놓인 바람의 형태를 출발점으로 삼아, 안료가 마르기 전에 지우고 다시 그리는 반복적 과정 속에서 화면은 끊임없이 재구성된다.
이 과정은 작가 스스로 내면의 감정과 흐름에 깊이 침잠하게 하는 수행적 시간이기도 하다.
머릿속에 그린 바람의 큰 흐름은 실제 작업에서 수차례의 변화 끝에 전혀 다른 방향으로 뻗어나가며, 감정의 결은 바람의 결과 함께 화면에 남는다.
식물 사이에 외따로 자리한 집의 형상은 이 여정의 마지막 지점으로, 쉼터이자 피난처, 그리고 마음을 머물게 하는 성소로 등장한다.
화가는 거대한 담론보다는 개인의 감정과 내면에 귀를 기울이며, 많은 이들에게 위로를 건네는 회화를 이어가고 있다.

최제이, The Sanctuary76, 72.7x60.6cm, Oil on canvas, 2025.jpg